
"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아몬드』는 이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선천적으로 뇌의 '아몬드'라 불리는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 그는 엄마와 할머니의 지극한 보살핌 아래 '평범하게' 보이는 법을 학습하며 세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의 세상은 크리스마스이브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슬픔도, 공포도 느끼지 못하는 윤재의 무표정한 반응에 세상은 '괴물'이라는 꼬리표를 붙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책을 읽으며 질문하게 됩니다. 과연 윤재는 정말 괴물일까요? 그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블로그:책에서는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의 행동에 담긴 의미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세계: 알렉시티미아(감정표현불능증)
윤재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열쇠는 바로 그가 앓고 있는 '알렉시티미아(Alexithymia, 감정표현불능증)'입니다. 이는 감정을 느끼고,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증상을 말합니다. 소설 속에서 윤재의 뇌 편도체(amygdala), 즉 '아몬드'가 남들보다 작다는 설정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기쁨, 슬픔, 분노, 공포의 부재: 윤재는 눈앞에서 가족이 끔찍한 일을 당하는 순간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합니다. 이는 그가 냉혈한이어서가 아니라, 뇌의 특정 기능 부재로 인해 공포나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사회적 맥락 이해의 어려움: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못하고, 타인의 표정이나 말투에 담긴 감정적 뉘앙스를 파악하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본의 아니게 무례하거나 이상한 아이로 오해받기 일쑤입니다.
결국 윤재의 모든 '이상한' 행동은 그의 잘못이나 선택이 아닌, 선천적인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인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반응했을 뿐입니다.
'평범함'을 향한 처절한 학습: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
윤재의 또 다른 행동 원리는 바로 '학습'입니다. 엄마와 할머니는 윤재가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지 않도록 '감정 조기 교육'을 실시합니다.
"사람들이 왜 웃는지, 왜 우는지. 분노와 공포는 어떤 표정으로 나타나는지."
엄마는 상황별로 느껴야 할 감정과 지어야 할 표정을 공식처럼 가르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와 같은 사회적 반응을 기계적으로 주입합니다. 이는 윤재가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자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따라서 윤재가 보여주는 로봇 같은 반응들은 감정의 부재와 더불어, 생존을 위해 학습된 행동 패턴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얼어붙은 세상에 나타난 균열: '곤이'와의 만남
그렇게 무채색의 세상 속에서 기계처럼 살아가던 윤재에게 '곤이'라는 뜨거운 불덩이가 나타납니다. 분노와 상처로 가득 찬 곤이는 윤재에게 폭언과 폭력을 쏟아내지만, 오히려 이 격렬한 관계를 통해 윤재의 세계는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곤이의 아픔을 통해 윤재는 타인의 고통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고, 그를 돕고 싶다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충동에 휩싸입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곤이라는 존재는 윤재에게 살아있는 감정 교과서였으며, 얼어붙었던 그의 세계에 균열을 내고 성장을 이끄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공감은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아몬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비정상일까, 아니면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해진 우리가 비정상일까.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게 세상을 마주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타인과 연결되려 노력했습니다.
윤재의 행동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타고난 조건과 생존을 위한 처절한 노력,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통해 변화하려는 의지의 총체였습니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다름'을 이해하고, 진정한 공감이란 무엇인지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그것은 그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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